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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청불 인물 엿보기

주지육림과 포락지형의 주왕 엿보기

by ISTJ, 회계쟁이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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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상의 국가에서 은허와 갑골문의 발견으로 실존했던 나라로 인정받게 된 상나라의 마지막 군주이자, 주지육림과 포락지형의 창시자로 악명이 높은 이가 주왕이다.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걸왕과 함께 걸주(桀紂)라 칭하며, 무려 3천년 동안 폭군의 대명사로 통하는 주왕이다.

 

폭군 임에는 분명하지만,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상고시대 인물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의 선전선동에 호되게 현재까지도 호되게 당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요 언행>

1. 잔혹한 형벌을 말리던 비간의 간언을 듣고는 "듣자 하니 성인은 심장에 7개의 구멍이 있다면서? 너의 가슴팍을 갈라서 확인해봐야겠다."고 말하며 비간의 심장을 갈려 죽이다.

그런데 비간은 주왕의 숙부였으니, 단지 충언하는 신하를 죽인 것만이 아니라, 숙부를 처참하게 죽인 패륜이었다.

 

2. 중국의 4대 팜므파탈 중 하나인 달기에게 푹 빠져서 그녀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며 매일 초호화 파티를 열고, 파티에서 난교를 일삼고, 심지어 달기의 말에 술로 호수를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드는 주지육림을 만들며 노는 것에 정신이 팔리다.

 

3. 주나라의 제후 서백(西伯) 희창(姬昌)이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잡히자, 주왕은 인질로 잡혀 있던 서백의 장남인 백읍고를 죽여, 그 시체로 죽을 만들어 서백에게 먹게 하다.

서백은 눈물을 삼키며 그것을 먹었고, 주왕은 평소에 성인이라 칭송받던 서백이 자기 자식의 살을 먹는다며 조롱하다.

 

 

 

<주요 에피소드>

1. 구후의 딸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그의 딸을 강제로 첩으로 삼다.

이에 분노한 구후가 악공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주왕을 죽이려다 음모가 들통나자, 주왕은 구후와 악공을 붙잡아 구후는 젓갈로 담그는 사형에 처하고, 악공은 육포로 만드는 사형에 처하다.

 

2. 『사기』 은본기의 내용을 보면, '술로써 연못을 삼고(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삼고(만들고), 남녀로 하여금 벗고 그 사이에서 서로 쫓게 했으며, 밤새 술을 마셨다.'라 적혀 있다.

 

궁녀와 대신들의 옷을 모두 벗기고, 축생처럼 손을 사용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게 하였다고 한다.

 

남녀가 벌거벗고 술에 취했으니 당연히 집단 난교도 일어났다. 명을 거역하는 자는 엄벌에 처했음은 물론이다.

 

3. 이궁(離宮) 뜰에 구덩이를 파고 불타는 숯을 반쯤 채운 다음, 구덩이 조금 긴 구리 기둥을 걸쳐 놓아 다리처럼 만들고는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발라 사형수들이 그 위를 건너게 하는 형벌이 포락지형이다.

기둥에는 기름을 발랐으니 미끄러워서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결국 미끄러져 아래에 있는 숯불 속으로 떨어져 그대로 타 죽게 되는 것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잔혹한 방식으로 죽이고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형벌이다.

 

 

 

<다른 일면>

포락지형의 경우 픽션일 가능성이 있다 한다.

 

최근에 은주왕이 인신공양을 폐지한 것을 칭송하는 내용의 갑골문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주왕에 대한 재연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주왕의 폭정은 은나라 왕위의 연이은 부자 상속 등으로 나라가 안정되며, 권력이 수도로 집중되자 이에 불만과 위화감을 느낀 제후들이 꾸며낸 것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그 단적인 가능성이 서주 무왕(서백 희창의 아들, 부친의 상중에 은나라를 정벌)의 입성 당시 상나라 사람인 백이와 숙제가 무왕이 ()하지 않다며이탈하는 등, 이 기습 공격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하늘의 뜻에 따라 폭군을 주살했다는 식으로 정당화한 내용이 《사기》에 나온 왜곡된 기록들일 수 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나의 인물 요약>

방탕과 사치의 상징인 주지육림이 제사라는 해석을 보면, 상나라 시대의 전통적인 제사 방식인 인신공양이 주왕의 시대에 접어들어 빈도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인신공양과 순장 등의 풍습은 이후 춘추전국시대에도 있었으니, 주나라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기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나라도 이후 춘추전국시대에도 심지어 명과 청시대에도 순장이 남아있어서, 조선에서 아직도 미개한 짓을 한다며 탄식하기도 했다는 기록을 보면, 주나라로 패권이 이전되는 역성혁명 과정에서 이전 왕조의 마지막 왕을 깎아 내리고, 새로운 왕조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는 시각이다.

 

어쨌든 폭군이었다는 사실에 있어서, 인신공양과 잔혹한 행동에서 폭군이라는 점에는 다른 의견을 가지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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