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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청불 인물 엿보기

어지자지 스캔들의 사방지 엿보기

by ISTJ, 회계쟁이 202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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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때의 성 스캔들 어지자지 사방지>

사방지는 조선 세조 때에 성 스캔들로 조선을 뒤집어 버렸던 인물이다. 어머니는 경주 최씨 집안, 즉 양반의 딸이었다고 한다.

 

어지자지란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한 몸에 다 가진 사람이나 동물을 일컫는 말로, 비슷한 표현은 남녀추니가 있으며, 고녀나 반음양으로 고쳐 부르기도 한다.

 

칠정산의 공헌자 이순지의 종이었던 사방지는 결국 이순지의 딸 과부 이씨와 놀아나다 조선 사회와 조정을 혼란에 빠뜨린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사방지와 비슷한 인물이 또 있는데, 임성구지라는 사람으로 사방지의 예를 참고하여 처벌했다고 한다.

 

 

 

 

<주요 언행>

1. 유전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외부 생식기는 남성을 갖춘 사방지의 본색을 숨기기 위해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얼굴에 연지와 분을 발라주고, 여장을 시켰으며, 바느질을 가르치는 등 완벽하게 여자 아이로 키웠다고 한다.

게다가 얼굴이 매우 예뻐서 주변에서는 음양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2. 장성한 후에도 사방지는 양가의 규방을 드나들 수 있었고, 겉모습이 완전한 여자였으므로 의심도 받지 않으면서 홀몸이 된 과부들과 무수히 놀아나기를 거듭했던 사방지에게도 고민이 생기다.

 

3. 상전이 만약 남자 노비와 인연을 맺으라고 한다면,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궁리하던 사방지는 상전의 허락을 받아 동대문 밖 절에 들어가 비구니 행세를 시작한다.

 

4. 절에서도 본성을 숨기지 못한 사방지는 비구니 중비와 지원 소녀 등과도 잠자리를 이어갔는데, 어느 날 비구니 중비가 임신을 두려워하자, “내가 일찍이 내수(內竪) 김연의 처와 간통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 잉태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다.

 

5. 헌데 김연의 처는 비구니 중비의 고모였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중비가 사방지와 헤어지며, 알고 지내던 김수석의 미망인 이씨에게 사방지를 소개했고, 사방지는 침모로 들어가 미망인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결국 중비는 환속까지 했다고 한다.

 

 

 

 

<주요 에피소드>

1. 사방지와 이씨가 10년이 넘는 기간을 보내면서, 두 사람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김 대감 댁 마님이 침모를 남편처럼 지극하게 받든다고 하데.”라거나 “듣자 하니 식사도 늘 같이 하고 똑같은 옷을 지어 입는 대.” 등의 소문이었다.

 

2. 포도청에서는 미망인 이씨가 이순지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사헌부로 사전을 이첩했고, 사헌부에서는 그와 간통했던 비구니 중비에게서 “그는 분명 남자입니다. 양도(陽道. 생식기)가 매우 장대합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사건은 대식에서 간통으로 변경되다.

 

3. 사헌부에서는 여의 반덕에게 사방지를 검사하게 하였고, 결국 여자이면서 남자처럼 커다란 생식기가 있음을 확인하다.

 

4. 여기서부터 사건이 복잡해진다.

성별이 불확실한 부마의 노비와 공신의 딸과 관계된 사건에 세조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황당한 사람이 여식의 집을 출입하는데, 이순지는 가장으로서 금하지 못하였으니, 실로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간통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닌데, 재상가의 일을 경솔하게 의논하고, 또 이런 괴이한 일을 품의하지도 않고 멋대로 조사했으니 참으로 고약하다.”고 하며, 오히려 수사하던 사헌부 관리들을 파직시키다.

 

5. 세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헌부 관리들은 석방되었으며, 당사자인 이순지를 불러 “그대의 딸과 관련된 사건이니 사방지의 처분은 알아서 하도록 하라.”고 명했고, 이순지는 사방지를 엄히 다스리면 딸의 부정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가볍게 처결하면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하다 결국 사방지에게 곤장 십여 대를 때리고 서울 근교에 외거 노비 집으로 쫓아내었다고 한다.

 

6. 하지만 사방지를 지아비처럼 여겨온 이순지의 딸이 온천에 목욕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를 따라갔고, 몇 달 뒤에는 다시 집안으로 불러들였고, 대신들이 안주거리로 사방지를 들먹이면, 늙은 아버지 이순지는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없지 않은가. 사방지는 틀림없는 여자야."라고 말하며 딸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7. 시간이 흘러 이순지가 사망하자, 대소신료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고, 명나라로부터 해동기재라 칭송받던 서거정의 명성을 빌어 세조는 “이 사람은 인류가 아니다.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할 수 없으니 외방의 노비로 영구히 쫓아내도록 하라.”고 판결하다.

 

8. 세조의 판결로 이씨와 사방지가 15년 동안 사실혼 관계는 끝났고, 사방지 개인의 질병으로 처리하면서, 이씨에 대한 처벌도 논외의 사안으로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다른 일면>

1. 기록을 보면 사방지가 불완전한 남성의 성기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반음양인의 판정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정도(精道)가 경두(莖頭) 아래에 있다고 하는데 이는 '사정관=요도'가 음경 끝이 아니라 밑으로 열린 요도밑열림증(요도하열)이라고 한다.

 

2. 요도하열은 음경의 선천적 기형으로, 발기와 삽입은 되나 요도구가 제자리에 있지 않아 사정을 하여도 정액이 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통상 성행위로는 임신시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3. 세조는 자신의 사위인 하성위 정현조의 조사에서 남자의 형상이 더 많고 음경, 음낭이 좀 이상할 뿐 남자의 형상이 더욱 많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불완전하지만 엄연한 남성인 사방지를 양성인으로 보아 일을 처리한 데에는 자신의 공신과 사돈의 체면을 위해서 그렇게 처리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나의 인물 요약>

1. 이순지의 딸 이씨와 사방지는 당시 조선의 법 규정으로 보아 적용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관련자들의 신분도 규정하기가 애매해서 세조와 중신들을 꽤나 괴롭힌 사안이었음이 분명하다.

 

2. 여자는 공신의 자손으로 명문 사대부가에 시집 장가보낸 자식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애정행각을 당당하게 과시했고, 사방지는 남녀 구별이 모호한 양성인이었기 때문이다.

 

3. 신분제가 폐지되고, 형법 상의 간통죄가 폐지된 현재도 처벌은 마찬가지로 어렵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어찌 보면 당시보다 각종 멀티미디어가 발달한 지금이기에, 인플루언서나 유명인이 비슷한 사안으로 회자되기 시작한다면,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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